누가 공개하고, 누가 규제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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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에서 오픈웨이트가 프론티어의 대체재가 아니라, 저비용 대량 처리를 담당하는 핵심 구성요소로 자리 잡았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오픈웨이트 모델들은 대체 누가 만들고 있고, 각국 정부의 규제는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결론부터 요약하자면, 통념과 달리 오픈웨이트 상위권의 주도권은 이미 중국 연구소들로 이동했습니다. 또한 각국의 규제는 ’오픈이냐 폐쇄냐’가 아니라 ’학습 연산량(Compute)’이라는 불안정한 대리지표를 기준으로 설계되어 있어, 정권에 따라 통째로 사라지거나 대형 오픈 모델의 면제 혜택이 무력화되기도 합니다. 여기에 벤더의 본국을 따지는 ’AI 주권’이라는 현실적인 기준까지 얽혀 있습니다.

법과 규제, 지정학이 복잡하게 얽힌 실제 지형도를 알기 쉽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오픈웨이트 상위권, 이제는 중국 연구소가 이끈다

오픈웨이트라고 하면 Meta의 Llama를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Llama가 이 거대한 흐름을 열어젖힌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2026년 9월 시점의 벤치마크 상위권 명단을 보면 판도가 완전히 다릅니다. 종합 벤치마크와 시장 지수, 코딩 벤치마크의 최상위권을 DeepSeek, Zhipu(GLM), Moonshot(Kimi), Alibaba(Qwen) 같은 중국 연구소들이 휩쓸고 있습니다. 반면 Meta와 Mistral은 오히려 뒤로 밀려난 상태입니다.

모델의 규모와 완성도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DeepSeek의 최신 모델은 조 단위 파라미터의 MoE 구조에 100만 토큰 컨텍스트를 지원합니다. 이제는 “오픈이 프론티어를 따라잡고 있다”는 말보다, 공개 모델 영역의 주도권 자체가 아시아로 이동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여기서 3편에서 다룬 라이선스 문제가 다시 겹칩니다. 고성능 오픈웨이트 모델을 도입하려면 필연적으로 중국 연구소가 작성한 라이선스 조항을 법무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앞서 보았듯이 라이선스 요약 문구만 믿을 수는 없으며, 세부 조건은 모델마다, 버전마다 판이하게 다릅니다.

규제는 “공개 여부”가 아니라 “연산량(Compute)“을 본다

규제 영역으로 시선을 돌리면 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각국의 AI 규제는 흔히 생각하듯 ’소스코드를 공개한 오픈 모델인가, 가려진 폐쇄형 모델인가’를 기준으로 나뉘지 않습니다.

규제의 칼날을 쥐고 있는 정부 관료들이 기준으로 삼은 것은 바로 학습 연산량(Compute)입니다.

법적 근거 학습 연산량 임계값 핵심 규제 효과
EU AI Act 10²⁵ FLOPs 초과 “시스템적 위험(Systemic Risks)” 모델 지정 → 강력한 규제 의무
캘리포니아 SB 53 10²⁶ FLOPs 이상 안전 프레임워크 사전 공개 및 중대 보안 사고 의무 보고

여기서 나오는 FLOPs(Floating-point Operations)는 모델을 학습시킬 때 수행한 총 부동소수점 연산 횟수를 뜻합니다. 10²⁵ FLOPs라는 숫자가 감이 잘 안 올 수 있는데, 최신 H100급 GPU 수만 대를 몇 달 동안 밤낮없이 풀가동해야 나오는 천문학적인 연산 규모입니다. 수천억 원의 전기세와 하드웨어 비용이 들어가는 최상위 파운데이션 모델에나 붙는 단위입니다.

규제 당국이 “지능이나 위험성” 대신 굳이 이 “연산량”을 법의 기준으로 삼은 이유는 단순합니다. 모델이 얼마나 똑똑하고 위험한지는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측정도 어렵지만, “GPU를 얼마나 오래 때려 박았는가”는 전기세 영수증과 데이터센터 규모로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찍히는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EU AI Act: 오픈소스 면제 뒤에 숨은 함정

유럽연합 인공지능법(EU AI Act)을 처음 보면 오픈소스 친화적으로 보입니다. 소스코드와 가중치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기술 문서 제출이나 규제 준수 의무를 대폭 면제해 준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법 조항 깊숙한 곳을 들여다보면 결정적인 단서 조항이 붙어 있습니다.

“This exception shall not apply to general-purpose AI models with systemic risks.”
(이 면제 조항은 시스템적 위험을 초래하는 범용 AI 모델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여기서 ’시스템적 위험(Systemic Risk)’을 가르는 기준선이 바로 앞서 본 10²⁵ FLOPs입니다.

이 단서 조항이 뜻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연산량이 적은 아담한 소형 모델은 오픈소스 면제 혜택을 주겠지만, 10²⁵ FLOPs를 넘기는 초거대 모델은 오픈소스든 아니든 적대적 테스트(Red-teaming), 위험 평가, 시스템 사고 보고 등 모든 규제 의무를 똑같이 뒤집어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프론티어와 견줄 만한 최신 상위권 오픈웨이트 모델들이 이미 이 10²⁵ FLOPs 선을 훌쩍 넘겨 학습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결국 현업에서 진짜로 쓸 만한 최상위 오픈웨이트 모델에게는 EU의 오픈소스 규제 면제라는 당근이 그림의 떡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2026년 8월 2일부터 EU AI Office의 완전한 집행 권한이 발효되었습니다.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정보 제출 요구, 모델 리콜 명령, 나아가 글로벌 매출액의 일정 비율에 달하는 거액의 과징금을 실제로 두들겨 맞게 됩니다.

미국: 정권 교체로 증발한 연방 규제와 캘리포니아의 독자 행보

미국의 상황은 또 다른 의미에서 극적입니다.

2023년 바이든 행정부 시절, 미국은 대통령 행정명령(EO 14110)을 통해 10²⁶ FLOPs 이상의 모델을 개발하는 기업에게 안전 테스트 결과를 연방정부에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규제선을 그었습니다.

그런데 2025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180도 뒤집혔습니다. “과도한 규제가 미국의 AI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기조 아래, 이 행정명령을 하루아침에 전격 폐지해 버렸습니다. 연방 차원의 컴퓨트 임계값 규제가 정권 교체 한 번에 통째로 공중분해된 것입니다.

그러자 주요 빅테크와 연구소가 몰려 있는 캘리포니아주가 발 빠르게 나섰습니다. 연방 규제가 사라지자마자 자체 주법인 SB 53을 제정하여, 연방이 버렸던 10²⁶ FLOPs 기준을 주 법률로 다시 살려냈습니다. 글로벌 AI 기업들 입장에서는 연방 법과 주 법의 엇박자 속에서 극심한 정책적 혼란을 겪고 있는 셈입니다.

컴퓨트 임계값이라는 대리지표의 근본적 한계

이처럼 규제 당국이 프론티어의 모호한 정의 대신 ’컴퓨트(연산량)’를 대리지표로 삼았지만, 현실에서는 심각한 왜곡이 일어납니다.

  1. 정권에 따라 법 자체가 흔들립니다. 미국의 사례처럼 연방 규제가 통째로 사라지기도 합니다.
  2. 알고리즘의 진보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면 10²⁵ FLOPs보다 훨씬 적은 연산량으로도 치명적인 고위험 모델을 만들 수 있는데, 이 모델들은 규제망을 유유히 빠져나갑니다.
  3. 반대로 억울한 규제가 생깁니다. 안전장치를 철저히 갖추고 합법적으로 연구된 대형 모델은 연산량이 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규제 비용을 물어야 합니다.

인프라 시스템을 다루는 엔지니어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실패 양식입니다. 마치 CPU 사용률 하나만 보고 서버의 전체 건강 상태를 진단하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CPU 사용률이 30%로 낮아도 메모리 누수나 데드락(교착 상태)으로 서비스가 뻗을 수 있는 것처럼, 컴퓨트라는 대리지표는 평소에는 그럴듯해 보여도 정작 결정적인 위험 앞에서는 조용히 빗나갑니다.

한국 — 성능도 규제도 아닌 세 번째 축: 주권

여기에 성능과 규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 번째 축이 강력하게 작동합니다. 바로 AI 주권(Sovereignty)입니다.

최근 기업과 공공기관 대상의 여러 설문조사에서, AI 솔루션을 도입할 때 벤더의 본국(HQ) 소재지를 주요 평가 기준으로 반영한다는 응답이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 상위권 오픈웨이트의 대부분이 중국 연구소에서 나오고 있는 현재, 데이터 보안과 컴플라이언스를 신경 써야 하는 조직에게 이 국적 문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현실적 장벽입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 HyperCLOVA X, LG AI연구원 EXAONE, 카카오 Kanana, SKT A.X, KT 믿:음, Upstage Solar 등 자체적인 모델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정부 주도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에서 개발된 K-엑사원 역시 2025년 12월 말 첫 성과를 공개했습니다.

하지만 3편에서 확인한 현실적인 제약이 여기에도 그대로 걸립니다. EXAONE 계열은 비상업용 라이선스이고, Solar는 로컬 경량 라인이 폐쇄형으로 전환되었습니다. “국산 모델이면서”, “오픈웨이트이고”, “상업적 이용까지 완전히 자유로운” 교집합을 찾기란 생각보다 훨씬 좁은 문입니다.

정리

질문의 축 대중적인 통념 실제 현실
누가 공개하는가 미국 빅테크가 이끈다 중국 연구소가 상위권을 주도하며, Meta와 Mistral은 밀려남
오픈이면 규제가 가벼운가 오픈 모델은 규제에서 자유롭다 작은 모델만 해당. 시스템적 위험(10²⁵ FLOPs) 체급은 면제 없음
규제 기준은 공개 여부인가 오픈이냐 폐쇄냐가 기준이다 아니다. 연산량(Compute)이다. 그 기준마저 정권에 따라 폐지됨
도입 기준은 오직 성능인가 벤치마크 점수만 보면 된다 벤더의 본국(주권)을 따지는 조직이 많으며, 라이선스 장벽이 큼

이 표가 보여주듯, 현실의 문제는 결코 “오픈웨이트냐, 프론티어냐”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풀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은 단순한 양자택일이 아니라, 복잡한 현실 속에서 모델들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라는 ’배치와 아키텍처의 문제’로 넘어갑니다.


다음 편

오픈과 규제, 주권의 지형도가 이렇게 복잡하다면, 실제 현장에서는 결국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배치해야 할까요? 마지막 5편에서 정리해 보겠습니다.